
알베르토 자코메티(Alberto Giacometti)가 살을 깎고 또 깎아내어 인간의 갸날픈 실존을 드러냈다면,
배형경은 '여전히 남아있는 것(What Still Remains)'이 무엇인지 묻는다.
사회적 지위, 관계, 외모 같은 부수적인 수식어들을 모두 덜어낸 뒤에도 마모되지 않고 끝까지 버티는 본질은 무엇인가.
인간은 자신의 판단을 완전히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없는 존재이다. 우리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경험과 감정, 기억, 가치관을 통해 해석한다. 그렇기에 우리가 가진 신념은 당연한 진리가 아니라, 끊임없는 성찰과 검증을 통해 다듬어야 하는 대상이다.
검증되지 않은 신념은 쉽게 확신으로 굳어진다. 확신은 판단을 빠르고 편하게 만들어 주지만, 동시에 자신의 오류 가능성을 보지 못하게 만든다. 인간은 확증편향, 자기중심 편향, 동기화된 추론, 기본적 귀인 오류와 같은 인지적 한계로 인해 자신의 생각을 사실이라고 착각하기 쉽다. 자신의 기준과 믿음에 질문을 던지는 것은 자신을 부정하는 행위가 아니라, 오히려 더 나은 판단에 가까워지기 위한 훈련이다.
타인과의 갈등은 종종 이러한 자기 검증이 이루어지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 나는 갈등 상황에서 상대의 행동이 두려움, 분노, 혹은 특정한 가치관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과 함께, 내가 놓친 사실이나 나 자신의 해석 오류 가능성을 먼저 살펴보려 한다. 상대의 행동 기제를 이해하고, 그것을 다시 나의 상황에 적용해 보면서 나의 판단 역시 언제나 인지적 편향의 영향을 받을 수 있음을 잊지 않으려 한다. 나는 내 믿음조차 검증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나에게 죄책감이라는 정서적 반응은 때때로 객관적인 판단을 왜곡한다. 타인과의 갈등에서 느끼는 죄책감은 반드시 자신이 잘못했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그 대상이 내가 애정을 가진 친구, 연인, 혹은 가족이기 때문에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될 수도 있다. 과도한 죄책감이 관계에 대한 책임감과 뒤섞일 때, 우리는 자신의 판단을 지나치게 부정하게 된다. 이러한 가능성을 인식하는 순간, 과도한 죄책감과 실제 책임을 구분하며 더 균형 잡힌 시각으로 상황을 바라볼 수 있다.
결국 판단의 책임과 검증의 출발점은 언제나 나 자신에게 있다. 외부의 판단에 쉽게 흔들리지 않으면서도, 누구보다 엄격한 평가자의 자세로 끊임없이 자신을 점검해야 한다. 객관성을 유지하기 가장 어려운 대상이 바로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자기 검증의 객관성은 어디에서 오는가. 완전한 객관성을 얻는 것은 인간에게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언제나 자신의 경험과 가치관이라는 관점 속에서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객관성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객관적인 판단을 포기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상대적으로 더 객관적인 판단은 가능하다. 객관성은 논리적으로 모순되지 않는지, 충분한 사실과 근거가 있는지, 다른 관점에서도 설명 가능한지, 그리고 판단으로 어떤 영향을 만들어 내는지를 끊임없이 검토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객관성은 완성된 상태가 아닌 편향을 줄이고 더 나은 판단에 가까워지기 위한 지속적인 과정이다. 자기 검증은 진리를 향한 탐구인 동시에, 확신의 유혹을 경계하고 더 성숙한 존재로 나아가기 위한 과정인 것이다.
검증하는 삶이란 객관성을 소유하는 삶이 아니다. 그것은 객관성에 가까워지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검증하고 수정하는 삶이다.
타인의 확신이나 기준을 맹목적으로 따르지 않고, 그렇다고 자신의 판단을 절대화하지도 않으며, 끊임없는 성찰과 자기 검증을 통해 자신의 기준을 다듬어 나가는 것.
그것이 내가 믿는 흔들리지 않는 삶의 방식이며, 결국 나를 성장하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힘이다.
💡코멘트: 우리가 가진 기준은 단순히 개인의 생각에 머무르지 않는다. 우리의 선택과 행동을 통해 타인과 세계에 영향을 미친다. 그렇기에 자신의 오류 가능성을 인정하는 태도는 단순히 지적인 겸손이 아니라, 타인과 함께 살아가기 위한 책임 있는 태도이기도 하다.
✅ Editor: chaelinee
📅 2026년 7월 7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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